글꽃마당

나는 아직 그들을 안아줄 수 없지만,

마음 그 위에 2025. 6. 19. 11:32

 멀리서 바라보는 따뜻한 세상

나는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참 좋아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고,

만지는 것조차 극도로 싫어한다.

강아지가 저멀리 보이면 길을 돌아가고,
고양이의 눈빛은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 속 그들은 다르다.
작고 여린 존재들이 전하는 마음, 눈빛, 삶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딸아이와 콩이의 짧았던 인연

예전, 사춘기 방황을 겪던 딸아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졸랐다.
마음이 안정될 것 같다는 딸의 말에,

내키지 않았지만 희망을 걸고
작은 말티즈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딸은 강아지에게 ‘콩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딸아이는 콩이에 대한 관심이 금새 식었고,
활발하고 애교가 많았던 콩이의 행동은

내게 큰 부담이 되었다.


 두려움과 미안함 사이

나는 콩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목욕, 배변 훈련, 쓰다듬기...어느 하나 자신이 없었다.
콩이의 눈을 마주칠 때마다, 엄마도 없이 낯선 집에 와
우리 안에 갇혀 지내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했다.

몇 번이고 용기를 내어 만져보려고 했지만
내 손은 이내 굳어버리고,

무서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여러날을 퇴근하는 남편이 올 때까지
차 안에서 기다리며 집에 들어가는 걸 망설인 적도 있다. 


콩이의  외로움

콩이는 매번 자기 꼬리를 입에 물고 빙빙 돌았다.
나중에 그게 ‘놀아달라’는 신호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더욱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내가 좋아하던 후배가
콩이를 보고는 맘에 든다며 입양을 원했다.
2년 전, 15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떠나보낸 후
다신 키우지 않겠다던 그 후배가 다시 마음을 연 것이다.

나는 어떤 대가도 받지 않고 콩이를 보내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잘 부탁해"를 되뇌였다.
짧았지만 미안함이 깊었던 기억.
그리고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는 죄책감...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

내 주위에는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함께 사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자식보다, 남편보다 더 위로가 된다며
사진을 보여주고 자랑하기 바쁘다.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TV 속에서도, 거리에서도
서로 교감하는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저 멀리서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아들이 고양이를....

얼마 전, 아들이 전화해 주말에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사실 나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어.

같이 가야할 것 같은데...."

뒷말을 흐리며 망설이는 아들에게 

나는 웃으며 거절했다.
"엄마가 고양이한테 밀린 거지?
아들아, 엄만 아직도 강아지도 고양이도 무서워.
특히 고양이는 더 무서워…"

책임감 있는 아들이 키우겠다고 마음을 먹은걸 보면

고양이의 딱한 사정이 짐작이 갔다. 

아들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내 마음의 경계는 여전히 크고, 단단하다.


여전히 마음으로만 다가가는 중

오늘도 나는 TV 채널을 돌리다
‘동물농장’ 앞에 멈춰 앉았다.
반려동물들이 주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화면 너머로도 전해진다.

비록 직접 다가서진 못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언젠가는, 조금 더 가까이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마음의 문이 조금 더 열리면
내가 느낀 이 따뜻함을
직접 품을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반려동물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돌보는 모든 이들이
오늘따라 더욱 존경스럽고,
참 고맙고 아름답게 느껴진다.